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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낙원, 코미노가 반격에 나섰다

by gold-d 2025. 4. 12.

    [ 목차 ]

몰타의 작은 섬 코미노가 오랜 침묵을 깨고 자신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 나섰습니다. 과잉 관광으로 붕괴 직전에 놓인 자연, 환경, 주민들의 삶을 되찾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된 것입니다. 단순한 여행지를 넘어 ‘보호받아야 할 섬’이 된 코미노의 현실과 새로운 변화의 흐름을 들여다봅니다.

지중해의 낙원, 코미노가 반격에 나섰다
지중해의 낙원, 코미노가 반격에 나섰다

블루 라군, 환상의 풍경이 만든 역설

몰타 군도의 세 번째 섬, 코미노는 면적이 3km×5km에 불과한 아주 작은 섬입니다. 자동차도 없고, 주민 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땅에는 지중해의 진주라 불릴 만큼 눈부신 풍경이 펼쳐집니다. 특히 ‘블루 라군(Blue Lagoon)’은 이름 그대로 푸른 수정처럼 빛나는 바다를 자랑합니다. 맑고 투명한 바닷물, 하얀 석회암 해저가 만들어내는 선명한 청록색과 푸른 빛은 사진가들과 여행자들을 매료시키며 몰타 관광의 상징이 되었죠.

하지만 문제는 바로 이 ‘환상’이었습니다. SNS와 여행 사진의 유혹 속에 블루 라군은 점점 ‘체험’보다는 ‘소유’의 대상이 되었고, 그 결과로 방문객 수는 폭증했습니다. 성수기인 여름이면 하루 수만 명이 좁은 섬에 몰려들며 코미노는 사실상 ‘과밀 관광지’가 되어버렸습니다. 한때는 고요했던 바닷가가 이제는 쓰레기, 소음, 배기 가스, 오염으로 얼룩졌고, 환경뿐 아니라 섬을 찾는 이들의 기대까지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몰타 여행 전문가이자 페이스북 페이지 ‘Malta Holiday Experience’를 운영하는 콜린 백하우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1980년 처음 코미노를 방문했을 땐 이곳을 혼자서 누릴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요? 여름이면 정말 지옥입니다. 혼잡하고, 더럽고, 실망스럽죠.” 그가 코미노를 더 이상 추천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 섬

코미노를 둘러싼 갈등은 단순한 ‘관광객 vs 지역민’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중심에는 공공 공간의 사유화와 자연 훼손이라는 구조적인 이슈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실제로 2022년, 몰타 시민단체 ‘무비멘티 그라피티(Moviment Graffitti)’는 섬 곳곳에 불법적으로 설치된 선베드와 데크 체어를 철거하며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들은 “코미노는 약탈이 아니라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연 공간이 영리 목적에 따라 점유되는 현실을 고발했습니다.

이러한 활동은 단순한 시위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몰타 정부 역시 점차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게 되었고, 2025년부터 코미노의 일일 관광객 수를 기존 10,000명에서 5,000명으로 줄이는 상한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그간 무제한적 관광 정책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으며, 지중해 연안 국가들이 최근 시행 중인 관광 규제 흐름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예컨대, 베니스는 당일치기 관광객에게 입장료를 부과하고 있으며, 그리스는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방문 인원을 제한하고 있죠.

하지만 이 상한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환경 보호 단체 ‘버드라이프 몰타(BirdLife Malta)’의 대표 마크 술타나는 “관광객 숫자를 줄이는 것은 시작일 뿐, 코미노의 취약한 생태계를 진정으로 보호하려면 지속 가능한 공공 계획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에 따르면, 사전 예약제로 제한된 수의 입장권을 발급하는 '티켓 제어 시스템'이 병행돼야 실질적인 변화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기대와 환멸 사이, 지속 가능한 해답은

코미노가 겪는 문제는 곧 세계 관광 산업의 고질적인 병폐를 상징합니다. 인스타그램 속 ‘버킷리스트’는 너무 자주 현실을 왜곡하고, 여행자는 아름다움보다 ‘좋아요’를 위한 인증에 몰두합니다. 이 과정에서 관광지는 소비되고, 공동체는 소외되며, 환경은 회복 불능의 상처를 입습니다.

코미노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버킷리스트에 남아 있습니다. 실제로 몰타 국영 항공사 KM몰타의 커뮤니케이션 책임자 레베카 밀로는 “블루 라군은 몰타 관광객의 가장 큰 목표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영화 <몬테크리스토 백작>, <트로이>, <왕좌의 게임>의 배경이 된 이 섬은 미디어에 의해 수십 년간 환상적인 공간으로 포장되어 왔죠.

그러나 환상은 언제나 현실과 충돌합니다. 현지 가이드 조앤 개트는 “관광객들이 천국을 기대하며 코미노를 방문하지만, 돌아갈 때는 대개 실망합니다. 혼잡하고 불편하거든요”라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이번 상한제 도입이 단순한 숫자 조정이 아닌, 생태계 회복과 지역사회 회복의 시작이 되기를 모두가 바라고 있습니다.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코미노는 여전히 여름철에는 고통스러운 밀집과 무질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변화는 시작됐지만, 지속 가능성의 이름으로 얼마나 멀리 나아갈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치가 첫걸음이 되기를, 그리고 미래 세대가 다시 ‘천국 같은 코미노’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목소리는 분명 존재합니다.

 

지금, 코미노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단기적 수익을 좇을 것인가, 아니면 장기적 보존과 회복을 선택할 것인가. 몰타의 작은 섬이 보여주는 이 결정은 전 세계 관광지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성공적인 여행지’란 단지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이 함께 지속 가능한 미래를 꿈꾸는 장소여야 한다는 것을 말이죠.